다들 잘지내셨는지요

다들 잘지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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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입니다.
미루다 못해 방치를 해버린 탓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번뜩 생각이나서 이렇게나마 적어봅니다.

막상 쓰려고 하니, 뭘 쓸지 고민하는 이 느낌도 반가운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하면은 적어야겠다라고 다짐했던 저 자신이 생각나네요 ㅎㅎ,,
그래서 24년 11월부터 지금 25년 7월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을 가다듬어서 남겨보았습니다.

취업

정확히 기억납니다. 11월 8일, 반 뒷자리에서 쌤 몰래 유튜브 보면서 노가리까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었습니다.
목소리가 누군지 몰랐지만, 아마 이사님이셨을겁니다. 같이 일해보고싶은데 학교선생님 연락처 좀 달라면서,,
너무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나도 이제 서울 개발자구나하면서 ㅎㅎ 사실 이전에 1곳 붙은데가 있었지만, it회사는 아니였습니다.
지금 붙은 곳이 안됐으면 현장실습만하고 수시로 붙은 대학교로 진학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루트를 타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막판에 잘 풀려 행복했던 기억이납니다. 그러고 부모동행 15일 쓰고 집에서 쉬었음 ㅋㅋ

상경 전

그렇게 12월 9일로 현장실습일이 결정되었고, 거의 한달동안 서울에서 지낼 곳도 찾아보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께선 걱정이 많으셨고 대구에서 지내길 원하셨습니다. 지금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 또한 그런 마음이었을겁니다.
고등학생때는 기숙사 생활하면서 같이 지낸 시간이 없었고, 이렇게 바로 서울로 가버리면 결국 부모님과 제대로 지낸 시간은 중학교 3학년때까지 밖에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두분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 생각이지만,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이유로 인해서 기숙사 고등학교에 진학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서울살이하면서 지낼 곳은 회사에서 지하철 20분 거리인 서울대벤처타운역 근처 고시텔에서 지냈었습니다. 리모델링한 곳이여서 시설도 깨끗했고 거의 새삥이였습니다. 에어컨, 티비, 냉장고, 침대, 전자레인지 등 모든 것이 풀옵션인게 신기했습니다. 관리인과 주인분도 친절하셨습니다.
이삿날에 부모님과 이모가 함께 올라와서 짐정리를 도와주시고 내려갔는데, 남은 짐을 풀다가 가방에 엄마가 써주신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읽으면서 울컥한 감정이 들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께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괜히 신나고 설렌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서울살이가 두려웠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대견스럽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써주신 편지내용이 이제껏 감추었던 제 속마음을 울음으로 터뜨려주었습니다.

첫 출근

그렇게 울면서 먹은 저녁은 버거킹이었고, 다음날인 12월 9일에 꿈에 그리던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보딩을 받고 회사사람들에게 인사를 돌렸습니다. 첫날엔 그렇듯 IDE 설치, github 올가 초대 받고 프로젝트 구조를 파악했습니다.
와 ㅈㄴ 어렵네 정도는 아니였고 읽을 순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교생활 하면서 개발한 게 뻘짓은 아니였구나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3일 후엔 프로젝트에 첫 기여를 했었습니다. 그때 막 너무 신나서 퇴근하고 부모님께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론, 큰 어려움없이 개발과 회사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사수님도 재밌는 분이시고 다른 팀원분들도 유쾌하고 친절하셔서 적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팀원들 앞에서 디자인 패턴 관련해 ppt를 만들어 발표도 해보고 이를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해본 경험도 있었습니다. ㅎㅎ

집 -> 출근 -> 퇴근의 연속

위 제목과 같이 동일한 일상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밥먹고 바로 자서,, 부끄럽지만 자기개발에 힘쓰지 못했던… 그래도 최근엔 책도 읽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주말엔 혼자 놀러다니거나 저처럼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들 만나고 또는 간간히 본가에 내려가거나하며 지냈습니다.
서울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많은 의지가 되면서,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선 부서가 많이 변경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모든팀원들이 자리를 많이 옮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입사 8개월 차인데 자리만 5번 바꿈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장님과 둘이 손잡고 개발할 때가 많았는데, 옆에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약간 마블의 팔콘과 호아킨 느낌이랄까요. 가끔씩 실수를 하지만, 다음번엔 안하도록 캐치해 주시는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개발하면서 티키타카가 잘 맞는 사람은 처음이였습니다.

지도 관련해서 개발을 했었는데 5000건 이상의 배차가 띄워질 때, 수많은 마커가 이미지로 띄워져서 브라우저 메모리를 엄청나게 잡아먹어 프레임드랍이 발생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커를 레이어로 띄워 개선했지만, 지도 렌더링이 느려지는 문제가 발생헀습니다. 쓰는 지도 라이브러리의 공식문서를 읽어보니 레이어 수가 많아질수록 그 양에 비례해 렌더링이 느려진다고 명시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논의 후, 배차에 대해서 클러스터링을 처리해서 선택한 클러스터만 마커와 폴리라인이 뜨도록 개선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우저 메모리와 지도 렌더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ㅎㅎ,,

언제 한번은 억울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A라는 부서에서 개발했던 적이 있는데 PO님과 1대1로 모든 팀원들이 면담을 했었습니다. PO님이 말씀하시길, A와 B 부서 중 어디에 있고 싶냐길래 당연히 A에 있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근데도 계속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서 묻길래, 약간 마지못해 B도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 이유도 A가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니라 B에 계시는 프론트 팀원들이랑 한번도 협업을 해보지 못해서다라고 말했습니다.
PO님이 알겠다하시더니 다음날 저랑 기획자분을 B부서가 아닌 다른 C부서로 보내버렸습니다.
팀장님은 이해가 되지 않아 따로 PO님과 얘기를 했지만, 이미 결정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팀장님도 느끼기에 PO님이 답정너 마인드로 제가 그런말을 하도록 유도를 한 게 느껴졌다고…

결국, 부서이동 당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앞으론 대화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의사를 명확히하며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짜 말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라는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6월에 이노베이션랩이라는 부서에 새로 배치가 되어 프론트엔드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이번엔 리더님과 손잡고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동당한 부서는 새로 생긴 부서인데, 나름 좋았습니다.
리더님이랑 손잡고 개발하는거라 옆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곳이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금은 1차 MVP 마무리 후, 2차 개발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점점 바빠질 예정입니다 ㅎㅎ,,

8개월 사이에 이사만 3번

12월, 2월, 7월 총 3번 이사했습니다. 사실 서울에 외삼촌, 외숙모가 살고 계십니다.
1월 추석 쯤에 엄마를 통해서 외삼촌네가 저를 위해서 방을 비워두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중히 사전방문 후, 2월 27일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이사 일주일 전에 고시텔에 몰래 고향친구랑 놀고 있었습니다. 근데 관리인한테 들켰는데 되려 필요한거 없냐고 물어보시더니, 편의점에서 술 사주시고 같이 마셨습니다 ㅋㅋ
아무튼 외삼촌께서 1년 정도 있어도 된다고 하셨고, 증산역에서 구디역까지 출퇴근하며 지냈습니다.

근데 왜 7월 달에 이사를 하게 되었냐면…
두분이 예민해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3월달에 알게 되었는데, 너무 예민(생활소음, 섬유연제 같은 화학냄새 등)하셔서 잠들다가 깨면 못주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론 방에서 쥐죽은 듯이 지냈습니다. 또 두분이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하셔서 평소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눈치를 D지게 보게됨

그래서 문 닫을때도 진짜 조심히 닫고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어도 못갔고 주말에 배고파도 밥달라는 소리도 일절하지 않았습니다.
빨래도 따로 빨래방 가서 하고 선풍기와 창문으로도 부족한 더운날엔 방문이라도 열고 싶어도 방에서 향수 냄새 난다고 해서 더움을 참아가며 버텼습니다. 머리도 못말렸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조심히 지냈는데, 두분은 그럼에도 불편하신 것 같았습니다. 언제는 외삼촌이 10시 30분 이후로 야근할거면 찜질방에서 자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참았습니다. 얹혀 사는데 제가 참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렇게 7월까지 버티다가 월급받고 방 구해서 그 다음주에 이사왔습니다 ㅋㅋ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회사와 도보 20분 거리에서 넓은 방을 구했고 집주인도 친절하십니다.
그렇게 집을 구하고 보증금과 월세를 직접 부담하느라 통장이 텅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큰거 4장 정도는 세이브 할 수 있었습니다.
숨만 셔도 돈이 나가겠지만 다시 열심히 모아야합니다 ㅜㅜ,,
이제야 진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느낀점이 있다면 해방감이 ㅈ됩니다. 외삼촌네에서 지내다가 나와서 그런가 너무 행복합니다.
마음 편히 잘 수 있는게 꿈만 같습니다.
밥도 은근 잘 해먹는 것 같습니다. 마트가서 세일하는거 있으면 놓치지 않고 딱딱 사놓고 해먹습니다.
아직은 요리가 귀찮지 않고 재밌게 느껴집니다. 나중에 된장찌개 끓여서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자취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들은 거의 다 갖추어서 왠지 모를 든든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퇴근하면 집에 가기 싫었는데, 이제는 집이 보고 싶어져서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고고씽합니다.
행복하다 행복해~

4개월 간의 연애

사실, 20살이 되고 첫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6년동안 짝사랑 했었고 어떻게 연이 닿아 사귀게 되었습니다.
서울 - 대구의 장거리 연애였고 거의 격주마다 내려가서 만나고 올라왔습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누군가와 사귄다는 것도 처음이였고 사랑한다며 표현해본건 처음이였으니까요.

저에겐 사랑의 의미란 상대적이며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10이란 수치를 채워야 내가 사랑받는게 느껴진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상대방이 주는 사랑이 6일때 4가 남아서 상대방이 날 안 사랑한다고 느끼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에 6이지, 상대방 입장에선 10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상대방도 나름대로 노력해서 표현하는거겠지. 점점 맞춰나가면서 내가 먼저 더 표현하면 상대방도 같이 표현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큰 서운함없이 연애를 해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거리로 인해 곁에 많이 있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해보고 싶어한다거나 갖고 싶어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맞춤연애를 했었고 그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전여자친구가 너가 이만큼 해주는데 난 그렇게 못해주는 죄책감과 괴리감으로 힘들었다고 얘기했으며 지금이라도 그만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만약 제 입장이었다면, 저는 더 노력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사랑이 식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싶진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 많이 좋아했기에, 그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붙잡는 건 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론 쉽게 납득되지 않았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본인도 이기적인 걸 알고 있다는 건 알지만, 예전부터 그걸 고치려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않았고,
저는 그런 모습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맞춰가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인지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바뀌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분명 그녀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점이 뭔지 스스로 곱씹어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녀 입장에선 제가 드는 생각들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밖에 안드네요.

아무튼 이렇게 계속 만나는 건 서로 힘들어지기만 할 것 같아, 저도 그만 만나자고 얘기했고 그렇게 4개월 간의 연애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후유증이라고 해야하나요. 길을 걷다가도 생각나고 일 할때나 밥을 먹을때도 생각이 납니다.
지난 주엔 대구에 내려갔는데, 대구에서 한 게 더 많았던 탓인지 더욱 더 생각이 나더군요.
이러다간 시간이 지날수록 잊긴 커녕, 점점 더 커질 것 같아 전부 지우고 안보이도록 치웠습니다. (연락처, 사진, 선물 등)

원래도 이성과 큰 접점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 지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내가 이만큼 주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큼 받고 있었네’하는 마음이 드는, 서로가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지치거나 비워지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마무리

이렇게 글을 써보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란 게 금세 흩어지는 휘발성이라, 바로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히기 마련인데 그걸 글이라는 형태로 남기는 이 자체가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사진처럼,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지만, 막상 그것을 누군가에게 공유하려 할 때
더 신중하게, 더 집중해서 글을 적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괜히 스스로가 대견하고, 또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